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(문단 편집) == 선거 이후 ==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정계 재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. 당장 [[15대 총선]]이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. 크게 4가지로 압축되는데, '1)충청-경북 지역 출신 민자당 의원들의 동요 및 자민련과의 연대 가능성, 2)민주당 내 이기택-김대중의 불안한 동거, 3)김대중-김종필 양김의 내각제 연대 가능성, 4)정치권내 세대 교체론'이다. 치명타를 입은 [[문민정부|YS 정권]]은 [[와신상담]](선거일 이틀 후에 [[서울]]에서 [[삼풍백화점 붕괴 사고]]가 터진다.)에 나서 그 해 여름 [[8.15 광복]] 50주년을 맞아 [[일제강점기]]의 대표적인 잔재인 [[조선총독부 청사]]를 철거한데 이어 겨울에는 [[5.18 민주화운동]] [[특별법]]을 제정하고 대형 비리와 쿠데타 혐의로 [[전두환]], [[노태우]] [[전두환·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|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]]시키면서 국민적 지지도를 회복[* 갤럽 직무 수행 긍정 평가 기준, 3년차 2분기 28%에서 4년차 1, 2분기 42%.]하는데 성공했으며 당의 전반적인 쇄신을 위하여 예전 5, 6공 색을 지우기 위해 노태우와 함께 만든 민주자유당의 이름을 YS의 대표적인 [[캐치프레이즈]]인 '신한국'을 본딴 [[신한국당]]으로 당명을 고치기에 이른다.[* 하지만 2년 뒤, IMF 사태가 터지고 김영삼 본인이 사실상 '''팽당하며''' 이번에는 당명이 '''[[한나라당]]'''으로 또 바뀐다.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명을 고친 사람이 바로 [[민주당(1991년)|민주당]] 후보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던 '''[[조순]]'''.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[[이회창]]이 있는 [[신한국당]]과 합당했다.] 그로 인해 신한국당은 다음해 치러진 [[제1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통합민주당(1995년)|통합민주당]]과 [[새정치국민회의]]로 갈라진 야권 분열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대구의 참패 속에서도 나머지 영남지역과 강원, 제주, 특히 수도권의 승리로 1당 유지에 성공하는 등, '''[[레임덕]]은 없다'''라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. 그러나 결국 1996년 [[크리스마스 노동법 날치기]], [[한보사태]]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됨과 동시에 이인제의 경선 불복, [[1997년 외환 위기]]라는 여러 최악의 사태를 겪으며 정권을 내주고 만다. 그리고 이 선거로 인해 [[3당 합당]]으로 소멸된 것 같았던 지역 구도는 완벽하게 부활했으며, 김대중은 정계 복귀와 대선 승리로 가는 큰 길을 열게 된다. 당선된 기초단체장 중 현재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 중인 인물로는 [[오규석]] 부산 [[기장군]]수 (전 기장군수), [[이시종]] 충북 [[충주시]]장 (전 [[충청북도지사]]), [[엄태항]] 경북 [[봉화군]]수 (전 봉화군수), [[김두관]] 경남 [[남해군]]수 (현 [[경남]] [[양산시 을]] 지역구 국회의원) 등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